사진 차승진
사진 차승진

물드는 단풍에 대하여

- 차 승 진 -

 

아내의 주방엔 가족들의 생명이 산다
날마다 아침은 와서 자명종은 아내를 깨우고
내무반 군인처럼 절도 있는 발걸음 소리
달그락달그락 그릇들이 질서를 지키고
칙칙 수증기를 뿜어대는 압력밥솥
습관이란 중독된 카페인 같아서
몸이 몸을 부르는 기억의 실행
나이가 시간에 물들면 얼굴에 나타나는
누군가로부터 배달된 자화상처럼
거울에 비친 주름이나 얼룩져 가는 반점들
바깥에서 돌아온 아이가 엄마를 찾듯
현관문을 열자 손수레에 얹힌 장바구니엔
난전이나 싹쓸이 장터에서 흥정된
채소들이 소복이 담겨있다
아직 볼일이 끝나지 않은 아내의 시간
부부라는 숫자의 단출한 식구가
입으로 들어가는 밥반찬
아, 복잡해지는 산술의 바다
어깨가 뭉치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는
말없이 흘러가는 쓸쓸한 계절에
가을빛보다 고운 단풍 물드는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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