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차승진
사진 차승진

가을의 기도

- 차 승 진 -

 

밀레의 만종으로부터 가을 들판을 물들게 합니다
저녁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햇살이 황금빛 은총으로 내리는 
풍경 속에서 우리를 발목 잡게 합니다

흑암의 혼돈을 정리하신 창조주
하나님!
가을은 이렇게 눈부신 광명에 젖어 드는지요

한 톨의 벼가 익어가는 들판에 서서
저녁이 오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아도
뜨거운 마음은 진실로 하늘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우리의 간절한 시간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앞으로 살아갈 날들까지
오롯이 되돌아볼 수 있는 신실함을
몸으로 느끼게 하여 주시옵소서,

밀 빵이 부풀어 오르는 뜨거움처럼 순정한 거듭남으로 더불어
어우러지는 작은 조각품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저녁이 오기 전에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밀레의 만종으로부터 가을을 물들게 하는 것처럼
자연의 작은 한 부분이라도
어우러져 모나지 않는 부속품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몸으로
세상에 태어나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길을 가는 동안 작은 풀잎 하나에도
천지창조의 전능함을 깨닫게 하여주시옵소서

아침이 오면 영롱한 햇살에 투명한 
물방울이 반짝이다가 스러지는
잠깐의 그 순간을 위해서라도 
기도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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